초기 이노무브 글
벤치마킹은 이노베이션 할 수 없다
slowblogger
2005. 2. 25. 07:30
2004년이 불경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미샤, 더페이스샵, EXR, 싸이월드, 레인콤, 메가스터디 등 소위 대박이 난 성공 사례들이 연말에 각종 언론을 장식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Innovation, 즉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데 성공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성공의 원천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 새로운 아이디어는 진공 상태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기존의 통념을 비틀어서 나온 이단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필자가 과거에 업계 최초로 온라인 보험을 만드는 프로젝트들을 하면서 겪은 가장 큰 어려움도 결국은 통념과의 싸움이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 보험을 하나의 추세로 인정하고 있지만, 불과 2-3년 전만 하더라도 업계의 많은 사람들이 업종의 특수성을 내세우면서 부정적이었다. 미국에서도 “Insurance is sold, not bought.”라는 격언이 있는데 연고판매가 절반 이상인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보험이 팔리겠느냐 라는 것이 대표적이었고, 그 외에도 안 되는 이유는 무수히 많았다.
컨설턴트들 중에도 있었던 부정적인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하여 많은 분석과 조사를 해야 했고,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 조사였다. 시장이 존재하지 않고 외국에도 거의 사례가 없는 온라인 보험의 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고객의 소리를 들어야 했던 것이다. 물론 고객은 말과 행동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고객을 조사할 때에는 여러 각도로 연구를 하였다.
고객 조사 결과는 긍정적이어서 이 결과를 내세워서 설득을 해 가는데, 이번에는 또 “그런 사업 모델로 성공한 외국 사례가 없지 않느냐?”라는 반박이 나왔다. 외국 벤치마킹을 해서 성공적인 예가 있을 때만 동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온라인 보험은 전세계적으로 거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벤치마킹 대상 찾기는 어려웠고, 그 이후는 찬성과 반대 논쟁이 계속 이어지다가 결국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본 최고 경영자의 결정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만약 최고 경영자가 “선진 사례” 벤치마킹을 의사결정의 조건으로 생각하였다면, 이 회사는 온라인 보험이라는 새로운 혁신을 만들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노베이션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드는 작업이고, 새로운 아이디어는 본질적으로 벤치마킹이 안 되는 것이다. 이노베이션을 벤치마킹한다는 것은 미국 사람들이 된장찌개를 얼마나 먹는지를 보고 미국 시장에 된장찌개를 팔자는 것과 같다. 남이 가 본 길만을 가겠다면 그렇게 하면 되지만, 새로운 길을 가려면 전례를 찾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최근 많은 기업들이 GE나 Toyota 등 성공적인 기업의 사업 방식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또한 지식, 전문성을 강조하면서 뭔가 새로운 사업을 할 때에 “그 사업의 최고 전문가”를 찾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벤치마킹이나 전문가 중시가 자칫 정해진 길만을 가도록 하여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사고에 걸림돌이 될 수 있지 않나 우려 된다. 얼마 전에 IT 업계의 임원이 홈 네트워크 전문가를 찾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아직 시작도 못 한 시장에 무슨 전문가가 있습니까?”라고 반문한 적도 있다. 전문성이나 경험은 사업의 기존 방식을 따라 할 때에는 의미가 있는 것이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물론 전문가나 선진 사례에서 한 수 배우고 따라 하는 것이 무용하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이노베이션을 만들고 싶은 경우에도 내가 하나에서 열까지 사업하는 방식이 모두 다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온라인 보험 회사도 자금 관리는 기존 보험사에서 가져올 수 있을 것이고, 택배 업체도 차량정비는 택시 회사에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기 위하여 달라야 하는 부분이 다르면 되는 것이지 다른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사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상품이나 서비스가 처음 등장하던 시기에는 모두 이노베이션이었다. 비행기, TV, 컴퓨터, 아파트 등은 지금은 당연시 되고 있는 사회의 일부이지만 등장한지 100년도 안 되었고 PC, 퀵서비스, 배달 피자, 이동 전화, 비즈니스 프로세스 아웃소싱 등은 지금 30대 이상 성인들이 어렸을 때는 없었던 새로운 것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아이디어들도 시장을 창출하고 성공을 해 가면서 나름의 “이 사업은 이렇게 하는 것이 정석”이라는 통념을 낳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PDA와 Smart Phone (PDA 기능이 들어간 휴대폰)을 개발한 Jeff Hawkins가 2004년 인터뷰에서 “이노베이션은 조직이 아니라 개인이 한다.”라고 얘기하였듯이 대기업의 이노베이션은 어렵다고 생각하는 전략가들이 많고 필자도 그 중 한 명이다. 글 앞 부분에 있는 최근 우리 나라의 이노베이션 성공사례도 대기업은 별로 없고, 신생 기업들이 많다.
이노베이션으로 대 성공을 거두고 싶다면, 사업의 기존 정석, 통념에 대하여 한 번쯤 의심해 보라. 꼭 그래야만 하는가? 달리 하면 안 되는가? 그 과정에서 수백억, 수천억짜리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면 해 볼 만한 의심일 것이다.
- 2005. 02 장효곤 (Innomove Group). Forbes Korea (www.forbeskorea.com) 3월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