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이노무브 글

한국의 롱테일과 새로운 기회 (2) - "만화, 개성적 개미의 세계로"

slowblogger 2006. 10. 24. 17:18

이노무브그룹이 한국의 롱테일에 대하여 한글판에 1장을 쓰기로 한 후, 우리는 평소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듯이 브레인스토밍을 하였다. 어떠한 사례가 있을까? 이노무브그룹에서 인턴으로 일했다가 그날 마침 놀러 왔던 조재철군이 대뜸 “만화요.”라고 제안하면서 온라인에서 아마추어들이 만화를 올리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덧붙여서 우리의 흥미를 돋구었다. 그래서 시작한 만화 산업에 대한 조사에서 상품의 롱테일 현상을 확인하게 된 것도 좋았지만, 플레이어의 롱테일 현상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더 큰 즐거움이었다.

우리는 일단 대형서점 중 한 곳을 분석하였다. 주요 대형 서점들에 가보면, 책의 바다라는 느낌이 든다. 책의 바다라는 느낌이 든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많은 책들이 있다. 또한 대부분 온라인 서점 사업도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비교에도 매우 적합한 환경이라고 하겠다. 우리는 일단 온라인이 오프라인보다 긴 꼬리를 보여주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의 만화 판매 데이터를 비교해보았다.

분석 결과 두 가지가 눈에 띄는데, 우선 머리 쪽의 비중이 별반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온라인이 히트 지향적이고, 그 대신 온라인의 꼬리가 훨씬 긴 것을 볼 수 있다. 6개월 동안 오프라인에서 팔린 만화는 총 3,000여종인데, 온라인에서는 약 7,000종으로 온라인에서 팔린 만화의 종류가 약 2배가 많았다. 온라인 상품 중에 오프라인에서도 판매되는 만화책을 제외하고 온라인에서만 판매되는 약 4,000종의 판매권수 비중도 14%에 해당하였다.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무시할 수 없는 양인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아마존과 오프라인 서점의 차이에서 보듯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제적인 차이 때문이다. 비싼 임대료와 인건비를 부담하는 오프라인 매장에 잘 안 팔리는 만화책을 무한정 진열할 수는 없기 때문에, 판매실적이 좋지 않은 만화의 경우 반품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인터넷의 경우 도심지가 아닌 곳의 창고에 보관하고, 웹사이트에 ‘진열’ 하는 비용이 매우 작기 때문에 많이 팔리지 않는 상품도 보관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온라인의 경우에는 오프라인에서는 취급을 하지 않는 온라인 전용 만화책도 있고,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더 이상 진열하지 않고 반품하는 만화책의 경우도 온라인에서는 계속 1-2권 정도를 보관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한다.

처음 우리의 계획은 오프라인에서 가장 다양한 만화책을 파는 곳이 대형서점들일 것으로 예상하고, 대형서점의 오프라인, 대형서점의 온라인, 네이버의 온라인 디지털 만화의 세 가지를 비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형서점에서 들은 답변은 약간은 의외였다. 만화는 상대적으로 마진도 높지 않고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2%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주력 상품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장서도 아주 많지는 않다고 하였다. 그로 인하여 우리는 당초의 계획된 작업 범위 외에 추가로 작업을 하는 부담을 좀 더 갖게 되었지만, 사실은 이 자체가 롱테일적인 현상의 일면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즉, 대형서점이 아무리 책의 바다라고 하여도 모든 것을 다 구비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사실 대형서점들도 롱테일적인 일면을 갖고 있다. 백화점과 비교해서는 책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에서 히트작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를 구비한 카테고리 킬러를 도입한 것이다. 아마존이 롱테일의 전형적인 예로써 많이 거론되지만, 대형서점은 인터넷 상거래가 등장하기 이전에도 대규모 오프라인 서점에서 다양한 취향의 소비자에게 다양한 책을 제공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소비자들이 더욱 다양한 책을 읽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대형서점 만화에서는 상대적으로 구색이 적은 것을 보면서 ‘주류(mainstream)와 니치는 상대적인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슨 얘기냐? 대형서점을 백화점으로 보이게 하는 만화전문 서점인 한양툰크를 만나보자.


한양툰크는 홍익대학 근처에 있는 만화전문 서점이다. 김기성 사장은 만화업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인사로서, 현재 국내 만화업계의 리더중의 한 명이지만 7년 전까지만 해도 증권맨이었다. 아는 사람이 사장이었던 한양문고(한양툰크의 전신)에 자금을 대 주었다가 한양이 부도가 나서 결국 운영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초기 3년 정도는 사업에 대해서 잘 몰라서 매우 고생을 했다고 하면서도 “배우는 비용이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웃으며 얘기하는 여유를 가진 사업가이다. 한양툰크의 매장은 대형서점처럼 크지는 않았지만 그야말로 만화가 가득하였다. 대형서점의 현대적인 인테리어에 비하면 낡은 분위기이지만 벽과 평대에 만화와 만화 관련 상품들로 빼곡히 차 있다 못해 넘쳐나고 있었다. 그 매장 외에도 창고가 두 개가 더 있다고 했다.

한양툰크는 다른 서점은 거들떠 보지 않는 절판된 만화책들도 구입하여 보관한다고 한다. 이유는 찾는 매니아들이 있기 때문이다. 김기성 사장의 말에 의하면 “여기가 우리나라 만화의 중심이라고 보셔도 됩니다.” 영화제작을 위하여 만화를 찾다가 절판이 되어서 출판사에도 책이 없고 만화작가도 갖고 있는 책이 없을 때, 한양툰크로 영화관계자들이 오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한양툰크도 온라인과 오프라인 서점이 있는데 김기성 사장에 따르면 오프라인이 좀 더 히트작의 비중이 높다고 하였다. 우리는 좀 더 데이터가 잘 정리되어 있는 온라인을 분석하였고, 결과는 대형서점의 온라인에 비하면 히트작 의존도가 상당히 낮은 것으로 보인다. 기간이 같지 않아서 비교를 위하여 추정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히트작의 비중이 더 낮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만화는 대형서점에게는 니치이지만, 한양툰크에게는 주류 시장인 것이다. 니치와 주류는 상대적이다. 우주에 비하면 지구는 점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에게는 지구는 평생을 봐도 못 보는 넓은 세상이고, 그런 지구에 비하면 너무나도 작은 돌멩이 하나도 그 속에는 엄청나게 많은 입자들이 숨어 있는 것처럼. 김기성 사장에 따르면 “한양툰크가 보유한 장서는 한국만화 25%, 일본만화 70%, 서양만화 5%”였는데, 한양 툰크에게도 서양 만화 카테고리는 니치일 수 있을 것이다.
대형서점의 온라인 매장에 비하여 더 많은 종류의 만화가 있는 툰크닷컴(Toonk.com)에서 더 다양한 책을 소비자들이 소비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당연하고 한편으로는 오묘한 얘기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더 많은 종류가 있으면 당연히 더 많은 종류가 소비되겠지 하는 거의 수학적인 관점이다. 오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런 꼭꼭 숨어있는 책까지 찾아보는 시장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과연 이런 현상은 공급이 있으니까 수요가 생기는 것일까, 아니면 수요가 있었는데 공급이 있으니까 그냥 팔리는 것일까? 이 질문은 실질적으로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노베이션의 본질에 대하여 일부 학자들간에 공급이 주도하는가 수요가 주도하는가 논의도 있지만, 사실 공급과 수요가 모두 역할을 해야 시장이 형성된다는 간단한 진리에 비추어 보면 둘 다 역할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신기한 만화책들이 많이 보이니까 그런 것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원래 보고 싶은 만화책들이 있었는데 못 보고 있다가 공급이 있으니까 표출되는 측면도 있다고 본다. 사실 모든 이노베이션이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흔히들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훨씬 다양한 취향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여태까지 본 만화 롱테일의 정도는 만화 전문 서점 > 온라인 대형서점 > 오프라인 대형서점의 순이다. 만화를 사서 보는 수요가 꽤 있다는 자체도 이번 조사를 하면서 놀란 점이긴 하지만, 만화책은 사서 보는 경우보다는 빌려서 보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적어도 예전에 필자는 그랬고, 친구들도 그랬다. 만화를 빌려보는 것에도 두 가지 모델이 있다. 하나는 흔히 만화방이라고 불리는 모델이다. 많은 사람이 경험이 있을 것으로 믿지만, 도서관 열람실처럼 만화책을 빌려서 그 자리에서 보는 방식이다. 또 하나는 만화 대여점이다. 이 곳은 그 자리에서 보는 것보다는 대출을 해 주는 곳이다. 두 가지 방식을 모두 하는 곳은 의외로 많지 않다고 한다. 우리가 찾아간 동덕여대 앞의 만화박물관은 국내에서 가장 큰 만화방중의 하나로서, 열람과 대여를 모두 하고 있는 곳이다. 이 곳의 대여 데이터를 보면 toonk.com보다도 더 꼬리 중심이고 히트 만화의 비중이 낮음을 볼 수 있다. 만화 대여 데이터가 있는 7년 6개월 동안 62,337권의 서로 다른 만화가 대여되었고, 이중에서 상위 4,500권(6개월 기준으로 하면 상위 300권과 비슷하다고 추정 가능)의 비중은 30%에 불과하였다. (대형서점의 경우 상위 300권의 비중이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65%, 온라인 매장에서는 55%였다)

왜 그럴까? 한 가지 유력한 가설은 만화를 보는데 따르는 비용이 더 작기 때문에 더 다양한 것을 소비한다는 추론이다. 만화책 한 권을 사는데 3,000원 정도의 값을 지불해야 하는데 비해, 대여가격은 그 10분의 1, 즉 300원 정도이다. 자동차 한 대만 가질 수 있다면 가장 평균적인 차를 살 사람도 여러 대를 살 수 있다면, 아무래도 스포츠카나 SUV 등도 시도해 보고 싶을 것이다. 별장을 소유하는 사람은 극소수지만, 콘도를 사용하는 사람은 훨씬 많은 듯, 전체를 소유하는데 부담이 되는 사람에게 약간만 사용할 수 있는 대안이 존재하는 것은 소비자의 태도에 매우 질적인 차이를 가져오는 것으로 보인다. 저렴한 가격이 모험적인 취향을 키우는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만화박물관의 고객들이 비교적으로 소수의 매니아들이라는 것이다. 만화박물관 사장의 얘기에 의하면 만화방에 와서 만화를 대여하거나 열람하는 고객들 은 대부분 하루에 한번씩은 만화방을 찾는 고객들이라고 했다. 이런 매니아 고객들은 거의 매일 찾아와서 새로 들어온 신간만 찾아서 보고 간다고 했다. 그래서 신간을 하루라도 빨리 확보하는 역량이 이들 매니아 고객들을 사로잡기 위해 필수적인 기법이라고 했다. 가끔씩 만화방을 새로 하겠다고 창업하는 사람들 중에 유명한 만화책들로만 싸게2천 권 정도 구비하여 만화방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백발백중 금새 만화방을 닫고 만다고 했다. 이유인 즉, 만화방을 찾는 주 고객들은 매일매일 신간을 찾는 매니아 고객인데, 아무리 유명하다고 해도 다 지난 옛날 책들만 가지고 있어서는 그런 고객들을 확보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만화방이 유망한 창업 사업이어서 많은 프랜차이즈를 내면서 만화책 구매를 지원해 주곤 했는데, 오랜 시간 만화방을 운영한 노하우를 이용하여 제대로 사업할 수 있는 작품들로 선별해서 골라주면 같은 권수라도 책 구매 값이 비싸지게 마련이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가격만 비교해 보고는 비싸다고 꽁무니 빼곤 하기도 했다 한다. 그럴 때면 아무리 설명해도 못 알아들으니 속만 탔다고 사장은 회상하였다.

대형서점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많은 수의 대중들이 소수의 히트작을 소비하고 있고,만화박물관의 경우에는 소수의 매니아가 다양한 니치 만화를 보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One for all과 all for one 정도의 차이는 아니더라도, “a few (products) for many (customers)와 many (products) for a few (customers)”인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당연한 얘기지만, 생각해보면 과거 피상적인 80/20 분석이 소수의 핵심 고객과 소수의 핵심 상품에 집중하라고 하는 결론을 내리면서 마치 소수의 고객과 소수의 상품이 동일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생각했으나 한 꺼풀 더 들어가면 그 둘이 꼭 상호 보완적 관계가 아니라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일 수도 있는 것이다. 많은 상품을 보유하여 매니아들에게 어필할 것인가? 아니면 많은 대중들이 찾는 소수의 히트 상품만 구비할 것인가? 이 같은 카테고리 킬러, 또는 전문점은 롱테일을 드라이브하는 강력한 사업모델이라고 보여진다. 문제는 위에서 얘기했듯이 수요가 존재하는가, 또는 수요를 촉발할 수 있는 흥미로운 카테고리가 무엇이냐일 것이다. 어떤 카테고리를 하느냐? 얼마나 좁거나 넓게 카테고리를 정의할거냐? 슈퍼마켓을 할 거냐? 반찬가게를 할 것이냐? 김치가게를 할 것이냐?

그렇다면 한양툰크나 만화박물관 같은 만화 카테고리 킬러들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가?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김기성 사장에 따르면 만화산업은 침체기이다. 특히 만화방/대여방의 경우가 그런데, 2000년 이후 만화방/대여방의 경우는 매출규모가 과거의1/3 수준으로 감소했다고 한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디지털 기술로 인한 시대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는데, 만화방/대여방이 하향산업이 된 것은 인터넷, 게임, PC방 등이 주요한 원인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만화가게에 왔을 법한 청소년이나 젊은이들이 PC방에서 게임을 한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많은 만화가들이 게임회사로 옮겨갔다는 것이다.멋있는 그림을 필요로 하는 게임에서 만화가들의 역량이 높게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게임도 만화가 진화한 형태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럼 만화산업은 정말 사양 산업인가? 꼭 그렇지도 않아 보인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게임산업이 만화를 계승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게임이 곧 만화이므로 만화가 활황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좀 억지스럽게 들린다. 하지만 더 직접적인 분야가 있는데, 그것은 온라인 만화이다. 다른 모든 미디어 산업과 마찬가지로, 만화도 디지털과 인터넷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만화도 이북(e-book: 디지털 파일로 파는 책)으로 살 수 있고, 인터넷에서 화면상으로 빌려볼 수도 있다. 지식 검색으로 유명한 네이버의 네이버 만화의 경우는 빌려보는 모델이다. 200-300원을 내면 컴퓨터 스크린으로 한 권을 하루 동안 볼 수 있다. 또는 2,000원을 내면 하루 종일 아무 만화나 볼 수 있도록 해준다. 물론, 이동식 컴퓨터가 아닌 다음에야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잡혀있어야 할 것이겠지만, 소비자에게는 하나의 새로운 대안이 생겨난 것이다. 만화방에 가서 볼 수도 있고, 아니면 거기까지 이동하는 수고를 덜고 집에서 만화를 골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온라인 만화를 선택한다면 물론 눈이 덜 피로하다거나, 손에 와 닿는 종이의 질감, 만화방의 분위기, 또는 빌려와서 누워서 본다거나 하는 종이 고유의 장점은 어느 정도 희생해야겠지만.

아직은 종이 만화책의 모두가 온라인만화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니어서 온라인 만화로는 볼 수 없는 만화책들도 꽤 있다고 한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즉, 온라인 만화가 단순히 오프라인 만화를 디지털화 한 것 만은 아니라는 것이다.디지털 만화를 올리는 만화가들의 상당수는 종이 만화책으로 출판하기 전에 시장성을 검증하기 위하여, 또는 자신의 시장성을 보여주고 (종이책으로) 출판 기회를 얻기 위하여 일단 디지털로 올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종이 만화책의 경우 출판사에서 출판하여 유통하려면 기본적인 인쇄 및 진열 비용 때문에 상당한 부수가 팔릴 것으로 기대해야 출판을 하지만, 디지털 미디어의 특성상 온라인 만화의 출판 및 진열 비용은 훨씬 작기 때문에 큰 리스크 없이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인터넷 포탈 ‘다음’의 ‘만화속세상’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영화로 제작되기까지 한 강풀의 ‘아파트’의 경우도 온라인을 이용한 만화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학창시절 쑥색 옷만 줄기차게 입고 다니는 것을 보고 동기들이 지어준 ‘강풀’이라는 별명을 필명으로 사용하는 강도영 작가는, 2003년 순정만화를 다음 포탈에 연재하면서 서서히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후 이 만화는 연극무대로까지 진출하여 많은 호평을 받았으며, 후속으로 연재된 아파트는 영화판권을 계약하는 등의 성공세를 달리고 있다. 강풀은 ‘아파트’라는 작품을 통해 ‘새로운 온라인만화의 가능성’을 여러 방향으로 선보이는데 성공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네이버 만화 섹션을 보아도 상당수는 종이책으로 나온 만화들이지만, 그렇지 않은 만화들도 많이 있다. 우리가 네이버 만화 사이트를 방문하였을 때 베스트셀러의 경우에는 모두 종이책으로도 판매되는 만화였지만, 신간만화의 경우는 30%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온라인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온라인 만화가 단순히 오프라인 만화의 디지털 버전이 아님을 보여주는 더 극명한 사례는 사용자들이 자유롭게 만들어서 올리는 사용자창작컨텐츠(UCC: user created contents) 만화들이다. 네이버 만화에는 ‘도전! 만화가’라는 코너가 있는데, 여기서는 누구나 자기가 만든 만화를 올릴 수 있다. 올리기 위해서는 만화를 그림 파일로 만들어서 업로드하면 된다. 그림 파일로 만들기 위해서는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그리거나, 종이에 그려서 스캔 하거나 하면 될 것이다. 이 곳의 만화들을 보면 상당한 수준의 그림 실력을 볼 수 있는데, 작가들의 홈페이지 등을 몇 군데 가보았더니 대부분 신인 작가이거나 지망생이었다. 네이버 만화에서도 ‘도전! 만화가’에서 인기를 얻으면 다른 코너에 만화를 실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만화가가 되는 좋은 등용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 코너는 2006년 1월에 시작되었는데, 2006년 8월말 현재 이미 3000개 이상이 올라가 있다. 하루에 출판사에서 출판되는 신간 만화가 20개 정도라고 하는데, ‘도전! 만화가’는 최근 20-30개 정도의 만화가 올라오고 있다. 물론 한 권 분량에 못 미치는 짧은 분량이 많아서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다양성을 증가시키는 효과는 분명한 것이다. 이에 대한 수요도 많아서 등록된 지 보름 만에 평균 3,000회 정도, 아주 인기가 많은 경우는 2만회 이상 조회되고 있었다..

UCC의 극단적인 모델로 네이버의 ‘’이 있다. 툰은 ‘도전! 만화가’보다도 더욱 대중적이다. 여기에는 주로 4-10컷 짜리 짧은 만화들이 올라오는데, 그야말로 아마추어들의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이처럼 일반인의 창작을 가능케 하는 것은 네이버 툰이 짧은 만화가 주된 형식이고, 이마저도 쉽게 그릴 수 있는 웹 기반의 도구를 제공하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시험 삼아 해 본 결과, 이전에 이용 경험이 전혀 없던 초심자가 8컷 만화를 올리는데 겨우 30분 정도가 걸렸을 정도로 사용법이 쉬웠다. (참고로 그 때 올린 만화는 등록한지 단 며칠 만에 2만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금주의 베스트 작품으로 뽑혀 모든 이를 당황시키기도 했다. (만화보러가기))

네이버 툰의 등록만화 중 1주일 치를 샘플로 조사하여 조회수를 분석해보니, 히트작의 비중이 다른 모델에 비하여 낮은 편이고 만화박물관과 유사한 수준이었다. 유명 작가에 의존하지 않는 모델이므로 브랜드 의존도가 낮은 것은 당연해 보인다. 또한 하나의 만화를 보는데 드는 노력과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덜 히트 지향적, 즉 더 모험적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만화를 효과적으로 진열하고 검색하고 선택할 수 있는 도구(크리스 앤더슨이 말하는 필터)들이 있는 것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런 환경에서도 히트작은 생긴다는 것이 오히려 흥미롭지 않나 생각된다. 히트작이 만들어지는 보통의 경로는 다음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 새로운 만화를 올리면,일단 해당되는 장르에서 올린 순서대로 게시가 된다. 일단 누구나 한 번은 사람들에게 보여질 기회가 있는 것이다. 게시가 되었을 때, 일단 중요한 것은 제목일 것으로 생각된다.일단은 제목만이 보여지므로, 제목에서 주목을 받지 못하면 클릭을 유도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조회를 하면서 조회수가 기록되고, 작품에 대한 평가를 하기도 한다. 한 두 사람이라도 만화를 재미있게 보고, 좋은 평가를 주면 제목과 더불어 평가가 게시되고, 그러면 방문자들은 제목, 평가, 조회수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만화들을 클릭하여 보게 되는 것이다. 초기 화면에는 일정 조회수 이상의 인기를 얻은 작품들만을 모아놓은 금주의 베스트 작품 코너를 별도로 두고 있고, 그런 인기 있는 만화의 처음 한 컷을 확대하여 보여줌으로써 히트작의 흥행을 더욱 촉발한다. 일정 수준의 재미있는 만화를 만든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충성고객을 만들게 되고, 다음 만화에는 상대적으로 처음부터 많은 조회수가 기록될 수도 있다. 툰 사이트에서도 히트작 이외에 히트 작가를 게시하여 이러한 역학 관계가 자연스럽게 일어나도록 하고 있다. 롱테일의 필터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롱테일의 필터는 역설적으로 꼬리가 머리가 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수 많은 상품을 진열하면서도 발견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고, 구전에 의한 히트작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툰을 조사하면서 가장 놀라왔던 것은 뭐니뭐니해도 매일매일 새로이 등장하는 만화의 숫자이다. 툰에는 하루에 평균 700개 이상의 만화가 사이트에 올라오고 있다. 종이책의 신간이 하루에 20권, 같은 온라인 만화 모델이지만 전문가 중심인 네이버 만화가20-30개 정도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양이 아닐 수 없다. 물론, 8컷 만화를 한 권짜리 만화책과 단순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가지 수가 훨씬 많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참고로 조회수가 높은 것은 20만 조회수에 이른다.) 소비자에게 손쉬운 생산수단을 제공하자 그들이 폭발적으로 생산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만화라는 카테고리가 갖고 있는 특성도 있겠지만, 소비자들이 ‘제작’에 참여할 때 생기는 상품의 다양화가 가져올 수 있는 미래의 롱테일 경제의 모습에 대한 단면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툰의 인기는 주목할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아마 사용자들의 참여로 볼 때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창의성을 살려서 컨텐츠를 만들어서 올리는 예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UCC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네이버의 지식인도 사실 완전히 능동적으로 만든 창의적 내용을 올린다기 보다는 질문과 답변이라는 반응적 시스템에 의하여 창의성보다는 지식을 올리고 있는 것이지만, 굳이 나누자면 지식 검색에서 더 창의적/능동적인 것이‘질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툰은 사용자들이 뭔가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자신의 창작품을 올리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UCC 모델에 대한 시사점이 크다고 본다. 이런 현상이 가능한 것은 아마도 누구나 쉽게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도구, 즉 롱테일 생산수단을 손에 쥐어 주고, 부담되지 않는 짧은 만화가 환영 받는 장을 제공함으로써 자신의 창조물을 만들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욕망을 현실로 만들어 주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