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관료, 또는 언론이 실물 경제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하여 하는 단골 메뉴중의 하나는 재래 시장에 가는 것이다. 상인들에게 장사 잘 되시냐고 묻고, 정부나 정치권이 어떤 일을 해야 할 지를 묻는다.  그러면 상인들은 경기가 너무 어렵다고 하고, 정치인이나 관료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다.  신문, 방송에서는 이렇게 실물 경기가 어려운데 정부는 뭐 하고 있느냐라는 논평이 뒤 따르는 경우도 많다."
필자는 정치인, 관료, 언론이 실제 경제 활동의 현장에서 문제점을 청취하는 활동 자체는 경제 환경의 개선을 할 때에 현실 감각을 갖기 위하여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재래 시장의 경기가 현재 한국 경제를 대표한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최근에 본 한 프로그램은 다른 프로그램과 달리 재래 시장의 “전략적” 문제를 어느 정도 비추고 있었다.  그 프로그램에 나온 상인들도 한결같이 경기가 안 좋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또한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장사가 매우 잘 되었고, 할인점이 근처에 들어올 계획인데 그렇게 되면 자신들은 완전히 망할 것이고, 한복 등 예전에 잘 나가던 상품을 요즘은 찾는 손님들이 별로 없고, 그나마 오시는 분들은 50대 이상이 많다는 얘기였다.

필자 생각으로는 상인들이 이러한 얘기들이 재래 시장이 처한 위치를 잘 나타내고 있다.  KISDI의 조사에 의하면 전체 소매유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재래 시장 등은 98년 60%에서 2003년 36%으로 감소한 반면, 대형 할인점은 6%에서 14%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참고로 인터넷쇼핑은 0.03%에서 5%, 케이블 홈쇼핑/카탈로그는 1.3%에서 3.1%로 크게 증가하였고, 백화점은 12.9%에서 12.3%가 되었다.)  유통 시장의 변화 관점에서 정리하면 “기존 사업 모델”인 재래 시장은 대형 할인점, 인터넷, TV 홈쇼핑 등의 “이노베이션 = 새로운 사업 모델” 에게 계속 시장을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경제 전반이 호황이라면 소비자들이 돈을 많이 쓰므로 하락세인 재래 시장도 어느 정도 경기가 좋겠지만, 장기적인 대체 현상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 그런가?  이유는 상인들의 말에 대부분 나와 있는 것 같다.  90년대 후반부터 할인점, 인터넷, 홈쇼핑 등의 새로운 유통 모델이 본격화 하였다.  특히 할인점은 백화점보다 가격이 싸고 직접 보고 고를 수 있고 생필품 등 백화점에서 잘 팔지 않는 물건들이 많다라는 재래 시장의 백화점에 표방하던 경쟁적인 가치 제언을 가지면서도 더 쾌적하고 주차가 훨씬 편하다는 등의 장점을 갖고 있다.  한 복 등을 찾는 고객이 없다라는 말이 통계적으로 정확한 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던 요즘 고객들의 구미에 덜 맞는 상품들로 구색이 되어 있음을 시사한다고 하겠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젊은 고객들보다는 나이 드신 고객들이 많고, 젊은 층이 주요 구매자가 되어 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비중은 위축되는 것이다.

우리들의 일상 생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변화가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첫째로 이노베이터(Innovator)가 이노베이션을 창출함으로써 시장 변화를 주도한다는 것이다.  변화라는 말은 매우 많이 쓰이고 있지만, 실제로 어떻게 변화가 일어나는 지는 잘 모르고 있다.  짧게 얘기하면 이노베이션이 있기 때문에 소비자가 변한다는 것이다.  물론 소비자가 변하기 때문에 이노베이션이 가능하다라고 얘기할 수도 있고, 이는 달걀과 닭처럼 무엇이 먼저인지 논하는 것이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소비자의 니즈가 변화하여도 그에 부응하는 상품이나 서비스가 없는 경우에는 변화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젊고, 운전을 하고, 쾌적한 환경을 선호하는 고객들도 가까운 곳에 재래 시장 밖에 없을 때에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것이다.

둘째, 이노베이션의 도전을 받는 기존 기업이 자신의 사업 모델을 변화 시키지 않으면, 쇠락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변화의 전략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나도 새로 등장한 이노베이션에 동참하던지, 아니면 나 자신의 고유의 강점을 살린 차별화된 모델로 변하던지, 아니면 제3의 또 다른 이노베이션을 만들어 내는 것 등이다.  물론 모든 이노베이션이 시장 전체를 대체하는 대규모의 변화를 가져 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전기 면도기는 수동 면도기를, VTR은 영화관을 대체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그냥 가만히 있었던 것이 아니고, 대부분 기존 사업 모델에 적합한 고객이 누군지를 알고 지키기 위한 변화의 노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셋째, 이노베이션이 소비자의 선호를 끌어낸 경우에 패자인 기존 사업 모델, 승자인 이노베이터 이외에 소비자가 또 하나의 승자라는 것이다.  시장에서 소비자는 항상 자기가 좋은 것을 선택하기 때문에, 전체로서의 소비자는 항상 이기는 것이다. 그리고 변화는 소비자가 이기는 방향으로, 즉 좋아지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소비자들이 재래 시장 상인들을 동정할 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문에 갑자기 재래 시장으로 발걸음을 돌리지는 않을 것이다.

넷째로 이노베이션이 시장의 판도를 양적으로 바꾸는 것은 오랜 세월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유통 채널의 경우 백화점이나 슈퍼 등을 포함하면 수십 년 변해온 것이고, 할인점이나 인터넷 등으로 좁혀도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재래 시장의 양적 비중은 아직 재래 시장 등 전통적 모델의 비중은 1/3이 넘는 상황이다.  물론 사이버 증권 거래처럼 어떤 이노베이션은 매우 빠른 시간에 판세를 바꾸기도 하지만, 그 경우에도 보통 몇 년은 걸린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모델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 모델을 시험해 보고, 습관을 바꾸고 하는 것에는 소비자와 공급자 모두의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프로그램에서 한 상인이 정부의 지원을 부탁하는 얘기를 하였다.  마음 아픈 얘기지만 필자는 정부의 지원이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소비자들이 찾지 않는 이상 지속적 생존은 어려울 것이다.  필자는 과연 재래 시장이 10년, 20년 전에 비하여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정확히는 모르나 소비자의 관점에서는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하겠고, 꼭 재래 시장을 가야 할 이유가 뭔지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정부, 또는 누군가가 도와준다면 가장 큰 도움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는 것이고 그 고민을 해야 한다는 현실을 직시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노베이션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시작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고, 기존 사업 모델을 변화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부디 재래 시장의 상인들께서 용기와 현실을 뚫어 보는 눈을 갖고 변화의 길을 가실 것을 기원한다.

- 2004. 09 장효곤 (Innomove Group). CEO Report (www.ceoreport.co.kr)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