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들의 “모방”을 통한 성공 방식

한국 경제는 반도체, 자동차 등 주요 산업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고 한다. 이러한 산업들은 20년, 30년 전에 씨가 뿌려진 것들이고, 지금은 기업가 정신이 약해져서 미래에 먹고 살 수종 산업이 보이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원천 기술은 미국이나 일본에 아직도 밀리는데, 반도체나 자동차 등 주요 산업에서 중국 등 신흥 국가들이 저 비용으로 치고 올라오고 기술 격차도 하루가 다르게 좁혀 지고 있다고 한다. 앞서가는 기업들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느라 고민을 하고 있지만, 많은 기업들은 뭔가 준비를 하긴 해야겠는데 뭘 해야 할 지 갈피를 못 잡고 있거나 미래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높은 성과를 보이고 있는 한국 기업들은 공통점으로 “빠른 모방자 전략”을 펴 왔다. “빠른 모방자”들은 다른 기업이 시작한 산업에 통상적으로 저가를 무기로 진입하고, 매우 공격적으로 시장을 잠식하면서 점점 더 기술이나 서비스 격차를 줄여나가서 선발 주자에 앞서는 수준의 상품, 서비스를 제공한다. 반도체가 그랬고, 자동차나 철강도 유사한 경로를 밟고 있다. 원래 이 전략은 일본 기업들이 많이 사용하였으나 일본이 고 비용화되고 기업들의 헝그리 정신이 아무래도 줄어들게 되자, 이제는 오히려 한국 기업에게 당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세계 시장뿐 아니라 국내 시장에서도 어떤 산업이 뜬다 하면 많은 기업들이 모방하여 뛰어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어느 시장 경제에나 공통적인 현상이지만, 한국 기업들의 경우는 좀 유별날 정도로 두드러졌다고 본다.

모방만으로는 어려움 – 글로벌 환경

그렇다면 이 전략이 미래에도 계속 한국 기업들의 성공을 보장할 수 있을까? 개별 기업의 환경에 따라 다르겠지만, 점점 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첫째 이유는 시장의 글로벌화이다. 산업에 따라 문화, 언어, 규제, 거리(distance)에 영향 받는 산업의 속성 등 국가나 지역 시장의 진입 장벽이 강한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이는 허물어졌거나 또는 허물어지고 있다. 전자 등 일부 산업의 경우는 이미 글로벌 시장이 되었다고 본다. 글로벌화된 시장에서 는 자국에서 이익을 내서 이를 해외 시장 투자를 위한 발판으로 삼는 것이 어려워진다. 왜냐하면 나의 텃밭이란 없거나, 있어도 글로벌 경쟁자들이 진입해 있기 때문에 쉽게 이익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지식과 기술의 흐름이 빨라져서 한국 기업들 이상으로 비용 경쟁력 있는 중국이나 인도의 기업들이 오히려 더 효과적인 모방자가 되기 쉬운 것이다.

모방만으로는 어려움 – 빨라지는 속도

둘째로는 경쟁의 속도이다. 20년, 30년 전에는 자동차 산업이나, 철강 산업이나, 심지어 전자 산업이나 지금처럼 경쟁의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수십 년 동안 같은 자동차가 같은 유통 채널로 팔려왔던 것이다. 기업가가 이 사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몇 년의 준비를 거쳐서 진입을 해도 기본적으로 같은 시장이 있는 환경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2-3년을 준비해서 이미 강자들이 있는 어떤 사업을 뛰어든다고 누가 얘기한다면, 무엇보다도 그 “시간”이 주요 리스크일 것이다. 어떤 시장은 몇 년 안에 증발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속도가 빠른 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온라인 포탈 시장의 경우 몇 년이 아니라 1년에도 몇 번씩 지배적인 모델이 바뀜을 볼 수 있다. 하이텔, 유니텔, 야후, 아이러브스쿨, 프리챌, 다음 카페, 네이버 지식검색, 싸이월드, MSN, 모바일 메신저 등 90년대 이후에만도 한 때 “떴었던” 모델들이 수두룩하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를 모방해서 현재의 강자를 이긴다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자동차에서는 10년, 20년 걸려서 따라잡을 수 있었으나, 온라인 포탈에서는 2-3년 고생해서 따라잡을 때쯤에는 이미 시장은 없어져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윤종용 부회장도 최근 뉴스위크의 삼성 특집 기사에서 “고가의 생선도 하루 이틀 되면 헐값이 된다. …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피드다”라고 얘기하였다.

모방만으로는 어려움 - 인정 받는 창의성

셋째 관점은 약간은 비경제적인 것이다. 한국 기업들도 이제는 뭔가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유산을 남겨야 할 때라는 것이다. 후진국, 중진국 시절에는 “열심히 한다”는 이미지도 칭찬이지만, 선진국으로 인정 받으려면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기업들도 진정한 리더로 인정 받기 위해서는 창의성이 있어야 한다. Innovation에 관한 케이스 스터디에 단골로 등장하는 기업들은 Dell (온라인으로 PC를 저렴하게 판매), 애플 (Graphic user interface), 월마트 (현대적인 할인점의 본격화), GE (에디슨의 전구), 슈왑 (온라인 주식 거래) 등이다. 아시아 기업으로는 소니 (워크맨) 등 몇몇 일본 기업만이 거론되는 것 같다. 한국은 아직 이노베이션에 대한 관심이 미흡하지만, 선진국에서는 이들 혁신적 기업들은 이익을 많이 내는 차원을 떠나서 거의 기업의 위인쯤으로 칭송을 받고 있다.

한국 기업의 리더들은 이러한 경쟁 환경과 자신의 입장의 변화를 알고 있는 것 같다. 뭔가 작품을 남기고 싶고 기억되고 싶은 고차원의 열망도 생겨나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뜻이 있다면 다음은 어떻게 이룰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나보다 앞선 회사가 하고 있는 것 중에 좋은 것이 뭐가 있나?”라는 사고는 유용하나 미흡하다. “남들이 하지 않는 상품, 서비스, 사업 방식 중에 좋은 것이 뭐가 있나?”라는 사고를 더해야 한다. 이것이 시장에서의 성공, 그리고 창의성을 널리 인정 받는 진정한 초일류 기업으로의 승화에 초석임을 강조하고 싶다.

- 2004. 10 장효곤 (Innomove Group). CEO Report (www.ceoreport.co.kr)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