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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중동은 위기인가?
    초기 이노무브 글 2004. 11. 8. 09:33
    신문 시장 규제는 중대한 위협을 가져올 것인가?

    최근 조선, 중앙, 동아 등 선두 신문들의 가장 큰 걱정 거리는 세칭 신문법안이 통과될 경우 강화된 시장점유율 규제를 받게 될 가능성인 것 같다. 참고로 이 법안은 신문 시장 점유율이 상위 1개사가 30% 또는 3개사가 60%를 넘으면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추정하여 불이익을 주게 되어 있다. 이는 공정거래법의 1개사 50%, 3개사 75%보다 강한 기준이기 때문에, 이 법안이 자유 시장 경제의 원칙에 어긋나느냐를 놓고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법적, 철학적인 논쟁을 하고 있다. 필자는 전체 사회를 위하여 이 규제가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 규제가 현실로 발효되었을 때 선두 신문사들이 쇠퇴의 위기를 맞을 것인가?”에 대하여 경영 전략가의 시각으로 생각해 보았다.

    어려운 문제이지만 필자는 “신문시장 규제가 조중동의 위기를 가져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유로운 시장 경제를 신봉하는 “언론으로서의” 대형 신문사들이 이 규제가 자유로운 선택을 막는 악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기업으로서의” 신문사들은 이 규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순전히 기업 전략의 측면에서 보면 열린우리당의 신문 점유율 규제는 침대보다 긴 다리는 잘라 버리는 그리스 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라기보다는 원수 같아 보이지만 지나고 보면 강한 체력을 만들어 주는 유격 조교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시장에는 여러 플레이어가 있지만, 기업 전략에서 가장 주역은 우리 회사, 경쟁사, 그리고 소비자이다. 이 경쟁에서 우리 회사나 경쟁자 가운데에는 승자도 있을 수 있고 패자도 있을 수 있지만, 집단으로서의 소비자는 장기적으로는 항상 승리한다. 물론 독점 상품을 지나치게 비싸게 사야만 한다던가 불완전한 정보로 인하여 불량품을 산다던가 하는 일들이 단기적으로나 일시적으로 있을 수 있지만, 더 나은 상품을 제공하는 새로운 경쟁자의 출현으로 결국은 소비자들에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러므로 선두 신문사들이 “소비자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가격 상승이나 규제를 우회하는 다른 창의적인 방식을 통하여 소비자들이 보상을 해 줄 것이다. 미국에 금주법이 있었지만 애주가들은 비싼 밀주를 사 마셨고 결국은 규제를 바꾸었듯이, 선두 신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진정으로 원하는 소비자들이 있다면 그 수요는 가격 상승이나, 또는 규제 범위 밖의 창의적인 방식이건 비집고 나오게 되어 있다. 문제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면”이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은 뭘 원하고 있는가?

    무료 신문과 이노베이션 다이내믹스

    출근길에 지하철을 이용하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요즘은 신문을 사서 보는 사람보다 지하철 선반 위에 널려 있는 무료 신문들 중 하나를 집어서 읽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이 신문들은 무료로 배포되면서 광고 수입으로 매출을 올리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갖고 있다. 사실 이러한 “컨텐츠는 무료, 수익은 광고에서” 사업 모델은 인쇄매체 중에서는 잡지에서 먼저 형성되었고 대부분의 온라인 미디어들도 이러한 모델을 갖고 있다. 넓게 보면 일부 온라인 음악 사이트들도 음악은 무료로 들려 주고 대신 광고나 인터넷상의 파일 저장공간 등 다른 서비스로 수익을 올리는 모델을 시도하고 있다. 이들 “무료 상품” 사업 모델은 새로운 기술의 개발 없이 존재하는 것들을 새로운 개념으로 재구성하는 “사업 모델 이노베이션”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기업의 기업가들은 “어차피 광고 수입이 가능하다면 소비자들에게는 무료로 주고 광고로 돈을 더 벌면 어떤가?”라는 발상의 전환을 한 것이고, 그 생각을 실천하는 데에는 아무런 기술적 문제도 없었던 것이다.

    최근 자료를 보니 이러한 무료 신문들을 합하면 하루에 약 250만 부가 발행된다고 한다. 이는 신문시장 1위인 조선일보의 발행부수와 비슷한 규모인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유료지 모델이 등장한 지 불과 2-3년이라는 것이다. 자료를 검색하다 발견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공식적인 미디어 기관들에 무료신문에 관한 통계자료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노베이션이 시장을 변화시키고 있을 때 자주 일어나는 현상중의 하나는 기존 시장 참여자들의 눈에는 변화 자체가 보이지 않거나 관심이 없는 것인데, 혹시 그런 현상의 일종일까? 비슷비슷한 업체들끼리 싸우느라고 출혈 경쟁도 많겠으나, “시장의 궁극적 결정자인 소비자들이 원한다”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필자는 앞으로도 이 시장은 성장할 것으로 생각한다.

    온라인 디지털화로 인한 미디어 소비 패턴의 변화

    또 하나의 큰 흐름은 디지털화로 인한 미디어 소비 패턴의 변화이다. 한국 언론 재단의 자료에 의하면 다른 미디어들이 제자리 걸음 내지 감소인 가운데 인당 인터넷 이용 시간은 98년 30분에서 2002년 77분으로 늘었다. 이미 인터넷에는 모든 오프라인 신문과 인터넷 전용 신문이 경쟁을 하고 있다.

    이러한 단순한 오프라인의 온라인화보다 더욱 중요한 질적인 변화는 온라인 디지털 매체의 기술적 특성으로 인하여 가능해진 비전통적인 소비 패턴의 등장이다. 첫째로 온라인 정보 Aggregator의 번성이다. 가장 대중적으로는 네이버, 다음, 야후 등의 포탈 사이트에서 뉴스를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이트들은 직접 취재를 하여 정보를 생산하지는 않지만 여러 미디어로부터 공급 받은 뉴스들 중에서 자신의 고객들이 선호하는 뉴스를 취합하여 진열하고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전통적인 유통구조에서는 뉴스의 직접 생산 및 구매를 통한 최종적 전달자였던 신문사나 방송사들이 포탈 뉴스에서는 정보의 생산 및 도매 유통자가 되고 미디어 산업에서는 정보 검색자에 불과했던 포탈들이 뉴스의 최종 전달자가 된 것이다. 이노베이션의 특징 중의 하나가 산업의 외부자가 변화를 시작하는 이노베이터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이 같은 현상을 포탈들이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대중적 인터넷 기술의 보급으로 개인들도 블로그 등을 통하여 연관된 정보를 모아서 다수를 상대로 한 미디어를 만들 수 있고, 한정된 주제에서는 대형 미디어보다 더 깊이 있게 다룰 수도 있게 되었다. 미디어 산업에서의 진입장벽은 거의 제로가 된 것이다.

    둘째는 미디어의 맞춤화이다. 필자는 업무 특성상 평소에 많은 정보 검색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두 가지를 하고 있다. 하나는 포탈에서 제공하는 맞춤 서비스를 통하여 내 컴퓨터의 홈페이지가 항상 내가 관심을 갖는 분야의 뉴스들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도록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관심 분야를 다루는 미디어들로부터 내가 직접 고른 분야의 이메일 뉴스를 받아 보는 것이다. 고맙게도 현재 이러한 서비스들의 상당수가 무료여서 예전 같으면 미디어 종사자나 금융기관의 딜러들이나 비싼 값을 지불하며 받아 보던 다양한 뉴스를 공짜로 받아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글로벌화이다. 인터넷의 힘은 적어도 미디어 산업에서는 국경을 허물어 버렸다. 영어만 할 수 있다면 해외의 뉴스를 현지 언론의 보도로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미 대선을 현지의 시각으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CNN이나 뉴욕타임스 사이트를 직접 방문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글로벌 미디어에의 접근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인들이 외국 미디어를 소비하는 규모는 작은 것 같다. 하지만 언어는 극복될 수 있는 문제다. 장기적으로는 글로벌화된 한국인이 늘어날 것이고, 단기적으로도 외국의 고품질 미디어들이 인터넷을 이용하여 뭔가 하기로 마음만 먹으면 실행 자체는 쉬운 일 아닐까?

    규제를 약으로?

    위에서 본 몇 중요한 변화에서 선두 신문사들은 모두 선도하는 입장이 아니다. 마이너 신문들은 무료 신문 시장에 뛰어들겠다고 많이 준비하고 있다고 하고 선두 신문사들은 아직 관망중인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변화들도 대형신문사가 주도하거나 또는 이의 수혜자가 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만약 이 변화들이 시장의 구조를 크게 바꾸어 놓는다면, 선두 신문사들은 그만큼 시장 지위가 떨어지는 결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변화에 동참하지 않고도 생존과 성장을 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 경계할 것은 지나고 보니 세상이 바뀌어 있다고 후회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두 신문사들이 고민할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이러한 변화들이 일시적이냐 아니면 장기적이냐를 고민하고, 장기적인 변화라면 어떤 변화에 어떻게 참여할 것이냐를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기존의 사업모델도 새로운 시대에 맞게 리모델링 해야 할 지 모른다. 이 같은 시나리오 하에서 점유율 규제는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기존 모델에 어차피 압박감을 느끼게 되므로 더 심각하게 다른 탈출구를 고민하게 되고, 기존 사업도 양적인 확대가 제약되어 있으므로 거품을 빼고 질적 업그레이드를 하는 작업을 도모하게 될 것이다.

    만약 대형신문사들을 약화시키는 것이 이 법안의 목적이라면, 매우 역설적으로 그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낳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대형신문사들이 단기적으로 조금 작아질 수는 있겠으나, 결과적으로는 더 강한 회사들을 만들 지도 모른다. 물론 더 좋은 신문사들이 된다면 그것도 나라와 소비자에게 좋은 일이겠지만.

    많은 정책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게 된다. 직관적으로 맞아 보이는 정책도 전혀 엉뚱한 결과를 나을 수 있고, 창의적인 전략은 종종 자살 행위처럼 보인다. 미국 정부가 어느 회사에게 “다른 회사들은 3년만 제품을 보증 수리하고 당신 회사만 10년을 보증 수리하라”고 명령하였다고 상상해보자. 이 회사는 억울해서 각종 제소를 했을 지 모른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결과가 있을 수도 있을까?

    - 이 회사 제품을 살까 말까 고민하던 소비자는 10년 보증 때문에 구매를 결심한다. 회사는 10년 보증을 문제없이 해내기 위하여 품질을 개선한다. 품질이 나아지기 때문에 추가적인 서비스 비용보다는 매출 이익의 증가가 훨씬 크다.

    말도 안 되는 얘기인가? 하지만 이것은 현대자동차의 미국 시장 성공 스토리이다. 물론 미국 정부가 이렇게 규제한 것이 아니고, 현대가 자체적으로 이런 자충수(?)를 둔 것이다.
     
    선두 신문사들에게 위기는 오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무섭고 힘세어 보이는 정부가 아니라 태연하고 산만해 보이는 시장에서부터이다. 10년후 조중동은 오늘의 이 규제가 변화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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