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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기업의 롱테일 전략 서문
    초기 이노무브 글 2006. 11. 13. 15:33

    이 글은 이노무브그룹 동료들과 함께 조사, 분석, 토의, 사유하여 쓴 글이다. 얼마 전에 책 하나를 번역한 이후 이제는 우리의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랜덤하우스코리아로부터 크리스 앤더슨의 The Long Tail 번역작업 제안을 받았다. 우리는 외국에서 히트한 개념이면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상적 사대주의나 새로운 경영개념이 히트할 때마다 이에 편승하는 구루Guru 상품화를 지양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의 번역을 잠시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크리스 앤더슨이 롱테일에 대해 최초로 썼던 <와이어드> 기사그의 블로그 등을 읽어본 후에, 우리 회사가 지향하는 이노베이션 방향과도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고, 더불어 ‘한국의 롱테일 현상’에 관한 원고를 써달라는 출판사의 제안이 지적 호기심도 발동시키면서 우리 책 집필을 계속 미루는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기에 제안에 응하게 되었다.

    마이클 포터와 엘리트 컨설팅 회사들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기업전략 사고는 기본적으로 이미 이루어져 있는 산업과 기업을 주 대상으로 했다. 기업전략이란 포드, GM, 도요타의 세계이고, 시티은행과 국민은행의 세계다. 시장점유율과 상위 3개사의 최근 성과 비교가 회의주제인 세계다. 또한 분석과 사후적인 해석이 중심인 세계다. 5 force, 3 C, value chain 분석은 ‘산업’의 큰 역학관계를 멋진 차트로 보여준다. 왜 어떤 회사는 잘되고 어떤 회사는 잘 안 되는지를 분석하여 ‘최우량사례(best practice)’를 정립한다. 그래서 은행의 최우량사례, 자동차의 최우량사례가 있다. 대기업의 관리에는 이런 것들이 유용하다. 하지만 이런 전통적 기업전략 사고는 창업과 이노베이션의 영역에서는 별로 유용성이 없다. 새로운 식당을 하나 차리려는 창업가에게 ‘외식업은 마이클 포터의 5가지 동인으로 분석해보니 수익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라고 컨설턴트가 얘기하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외식업이 ‘평균적’으로는 전망이 좋지 않은 산업이라 할지라도, 잘되는 식당은 잘되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창의력과 의지력으로 무장한 혁신가에게 ‘산업 분석 결과’ 운운은 잘해봐야 참고사항이고 잘못하면 ‘사업을 모르는 사람들의 탁상공론’일 뿐이다. 그에게 도움되는 얘기는 “아이들하고 식당에 같이 가고 싶은데 아이들 놀 데가 있으면 좋겠어요” “미국에서 남미음식점 가보니 맛있던데 한국엔 없나?” 같은 ‘사업 아이디어에 대한 힌트’다. 전통적인 기업전략 사고는 이런 면에서는 거의 무용지물로 보인다. 마치 상대성 원리가 별들의 움직임은 잘 설명하지만 아주 작은 소립자의 세계에서는 양자역학이 필요했듯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이노베이션에는 새로운 사고가 필요한 것이다.

    다행히 이노베이션을 위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 기업 현장에 있는 Guy Kawasaki, Seth Godin, Michael Silverstein, 학계에 있는 Christensen 교수, 김위찬 교수, MacMillan 교수, McGrath 교수, Nalebuff 교수 등이 그런 사람들이다. 이런 이노베이션류의 관점은 분석적, 해석적이 아니라 ‘창조를 도와주는’ 관점이고, 이미 있는 사업방식이나 산업에 대한 얘기보다는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사업방식과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주어진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하고 사업 포트폴리오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기존 전략의 중요 이슈였다면, 이노베이션의 주관심사는 새로운 사업을 어떻게 창조할 수 있는지이다. 설득력을 얻기 위해 분석적인 관찰에 기초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노베이션 관점들의 핵심적인 내용은 창의성을 도와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롱테일 경제학”은 이노베이션적 관점의 책이고 창의성에 대한 가이드를 제시하는 책이다. 책을 통해 ‘사업을 롱테일적으로 분석하는 법’도 알 수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롱테일적인 사업을 만드는 법’에 대한 지침과 조언이다.

    우리는 롱테일적인 관점을 한국에 적용해, 그런 흐름이 있는지도 이해하고 또 어떻게 하면 새로운 롱테일 기회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했다. 특히 앞으로의 세계는 작은 기업과 개인들이 무대 전면에 나오게 될 것이라는 예상과 기대 하에 이런 작은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번창할 수 있을지에 집중했다. 우리를 포함해 최근 이노베이션류의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작은 것, 개인, 소기업에 주목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마이크로소프트가 빌 게이츠의 지휘 아래 그런 방향으로의 사업모델을 대대적으로 개발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인터넷의 1차 물결이 대기업의 상거래를 인터넷으로 가져오는 것이었다면 현재 화두인 웹2.0은 개인과 소기업이 하기 어렵던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심이다. 롱테일은 그런 흐름의 대표적인 사고이고, 우리는 한국에서 그런 흐름이 일어나고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더욱 일으킬 수 있는지에 대해 검토해봤다. ‘한국은 중소기업이 잘될 수 없는 구조다, 한국사람은 냄비 근성이 강하고 유행이나 대세를 따르기 때문에 틈새시장은 어렵다’라는 통념들을 들어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런 움직임이 약하지 않을까 심지어 앞으로도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조사과정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담아서 표현하는 롱테일의 싹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것을 보고 듣고, 그것을 지면에 쓸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다. 이런 과정에서 한 가지 중요하다고 느낀 것은 대기업과 소기업이 각각의 역할 속에서 주고받아야 하는 파트너라는 것이다. 소기업과 개인은 틈새시장을 만드는 창의적이고 독특한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데 적합하다. 이런 소기업의 독창성이 만발하게 하려면 이를 가능케 하는 하부구조가 필요한데, 이런 하부구조의 하부로 내려갈수록 대기업이 역할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영역으로 보인다. 크고 작고 성향이 다른 각 주체들이 모두 자신의 장점에 따라 고유한 가치를 뽐내는 경제는 참으로 멋지지 않은가!

    ‘한국 기업의 롱테일 전략’ 원고를 쓰면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이 작업의 파트너로서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 김옥경 편집장의 시각도 (물론 혜안이었기를 바라지만) 평범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시종 함께 작업하느라 수고가 많았던 연에게 특히 감사하고, 일상업무를 좀더 맡아주면서 번역도 도와주어 롱테일 원고 작업을 수월하게 해준 영호와,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준 기연 형님, 만화 아이디어를 준 재철, 직접 만화를 그렸던 현우, 조사를 많이 한 경진에게도 감사한다. 인터뷰, 데이터 제공 등으로 도와주신 한양툰크의 김기성 사장, 유인바이오테크의 구영권 부사장, 오지의 권준수 사장, 본투숍의 박지수 사장, 대형서점의 여러분들, 만화박물관의 강경훈 사장, Juny의 우새봄 님에게도 감사한다.

    사회적으로 우려가 많은 사교육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창의적인 롱테일 소기업 등 실마리를 보고도 시간관계상 다루지 못한 것들이 있어 아쉽지만, 앞으로 사회 많은 분야에서 독자들이 직접 롱테일을 보게 될 것을 기대하며 아쉬움을 달랜다. 롱테일의 시각으로 보면 이미 존재하는 롱테일, 앞으로 생길 수 있는 롱테일이 보일 것이다. 이제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꼬리로의 여행을 시작해보자.


    이노무브그룹 대표 장효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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